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계 폴란드인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폴란드의 이웃 국가 독일은 전통적으로 인구가 과밀했던 지역으로 [[독일인]]들이 [[폴란드 왕국]]으로 이주-정착하는 경우가 흔했다. 이들은 주로 상공업자들이었는데, 폴란드 귀족들은 기술적으로 보다 진보한 독일인 상공업자들의 폴란드 이주정착을 장려했기 때문이다. 이를테면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의 무역의 핵심을 담당하던 항구도시 [[그단스크]] 시 주민의 경우 상당수가 독일계였다. 근대 [[프로이센]]의 기원이 되는 [[독일 기사단국]]의 경우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의 봉신국이었으며, 그 기원은 폴란드 왕국에서 초청한 [[튜튼 기사단]]이었다. 그러나 튜튼 기사단은 폴란드와도 잦은 전쟁을 치루었고, 폴란드-리투아니아 멸망에 그 후신인 프로이센이 힘을 보태면서 폴란드 민족주의에서 독일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강하다만... 오늘날 폴란드의 영토로 편입된 [[실레시아]] 지방의 경우 서기 13세기 이래 독일인 상공업자들의 이민을 받으면서 도회지 주민 대다수는 독일계가 차지하고, 현지 서슬라브족 실레시아인들은 주로 농촌에 거주하는 사회 구조가 유지되었었다. 2차대전 이후 [[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|폴란드에서 독일계 인구를 대대적으로 추방]]한 이후 폴란드에 잔류한 독일계 인구는 대개 실레시아(슐레지엔) 지방에 대대적으로 거주하던 독일인들의 후손이다. 물론 독일인 상공업자만 폴란드 영토로 이동했던 것은 아니었다. 그단스크 주변 [[비스와 강]] 하류는 늪지대가 우거져서 개간이 쉽지 않았고, 폴란드 입장에서는 비교적 선진 농경기술을 가지고 늪지대를 개간해 줄 사람들이 필요했는데, 이러한 연유로 독일인이나 네덜란드인 농민들이 폴란드 북부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. 독일에서 종교 문제로 따돌림을 당하던 [[재침례파]] 신도들이 폴란드 북부로 이주하여 늪지대를 개간하는데, 나중에 이 지역이 프로이센의 영토로 귀속되면서 재침례파 신도들 입장에서 문제가 생긴다. 재침례파는 병역을 거부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, 프로이센 정부는 군복무를 한 남성만 토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있었고, 재침례파 신도들은 농경지를 새로 구입하지 못하는데 인구는 늘어나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빈곤 문제를 겪게 되었다. 결국 상당수의 재침례파 신도들은 미국 등으로 이민하거나 아니면 동쪽의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하여 [[독일계 러시아인]]이 되기도 하였다. [[폴란드 분할]] 이후 폴란드 영토 상당수가 [[프로이센 왕국]]과 [[합스부르크 제국]]의 영토가 되면서 독일인들의 폴란드 이주도 증가하였는데, 이들은 폴란드-리투아니아 시절 이전부터 번영했던 동유럽의 독일계 상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폴란드 내 상권을 성공적으로 장악하였었다. [[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]]를 기점으로 폴란드의 독일인들은 거의 다 추방되고 독일인 문화 유산이나 무역망 역시 소개되었다. 오늘날의 [[폴란드]] 땅에서 독일계 주민들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이 적지 않았던 덕분에 여전히 독일계 폴란드인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. 폴란드 국적의 [[아슈케나짐|아슈케나지]] [[유대인]] 역시 독일어 계통의 [[이디시어]]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를 기준으로 민족 분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"독일계 폴란드인"의 일부로도 정의될 수 있다. 대체로 조상 대에 종교만 빼고 완전히 폴란드화되어 폴란드식 성을 쓰면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분류되고 독일계 정체성을 유지하여 독일식 성을 쓰면 독일계 유대인으로 분류되는데, 전자는 폴란드 왕국([[리투아니아 대공국]]과의 동군연합이 되기 전)이나 폴란드-리투아니아 시절에 이주해온 독일계 유대인이 기원이고 후자는 폴란드 분할 이후에 이주해온 독일계 유대인이 기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